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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육아(育兒)

생후 31일차 - 그날 나는

by 사용자 aner 2019.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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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으로 아내가 집 밖을 나섰다. 발에 습진이 생겨 그대로 두면 더 심각해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결정한 일이다. 평소의 아내라면 병원에 가는 일은 고사하고, 대충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쪽에 가깝다. 이따금씩 아픈 기색이 보이면 병원에 가볼 것을 권하지만, 병원 만큼은 정말 싫어하는 아내에게 통할리가 없었다. 아무튼, 본인이 병원에 다녀오는 동안 아이를 봐달라는 부탁에 흔쾌히 수락했다.

 

이틀동안 깎지 않은 거친 수염은 덥수룩하다. 감지 않은 머리는 덕지덕지 기름 졌지만 최악은 면했다. 더군다나, 오늘 나는 외출할 계획도 엄두도 없었으니 아무렴 괜찮았다. 의자에 다리를 올려 아줌마 자세로 앉아 노트북을 열어 젖혔다. 며칠 읽지 못한 글을 찾아 헤매고, 언제 촬영했는지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사진들도 하나씩 열어보며 글감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간 가꾸지 않은 티스토리 스킨을 이리저리 바꾸어 보기도 하고, 새로운 기능을 살폈다.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과 소소한 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숙면에 든 아이는 단 한차례도 깨지 않았다. 가끔 용트림을 하느라 낑낑거리는 소리에 들여다 본 아이의 얼굴 위로 창 밖에서 스며든 햇살이 은은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밤새 우느라 지쳤기 때문일까. 조금 전에 먹은 분유가 충분한 포만감을 주어서일까.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몸을 버둥거리며 울음을 터뜨리면 어찌할까 싶었던 걱정과 달리 새근거리며 잘도 잔다. 마치 그동안 잠못자고 고생하던 아빠에게 휴가라도 준 것 마냥. 

어쩌다 한번씩 삐쭉거리는 입이 참으로 귀엽다. 웃는 것 같다가도 비웃는가 싶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찡그리는 턱에 못나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새끼는 이쁘다.

 

분유를 먹은 지 3시간 30분 정도가 지날 즈음, 제법 오랫동안 끙끙거렸다. 씩씩거리는 소리가 커지고, 겉싸개가 들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눈을 뜰 시간이 지난 지 한참이었지만, 어쩌면 잠시 그러다 말고 다시 잠에 들지도 모른다 생각한 나는 계속해서 모니터를 응시했다.

 

"아앙!"

 

기대와는 달리 아이는 울고 말았다. 하던 일 손에서 놓고 달려간 방에서 아이는 얼굴을 붉힌 채 울먹거리고 있었다. 아직 아내는 외출중이고, 나는 금새 분유를 타기 위해서 젖병을 찾아 들었다. 가슴에 끌어 안고 분유를 먹이는 동안 문득 내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7살 때였던가? 그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던 나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눈을 뜬 방안의 기운은 황량했다. 동생도, 엄마도 없었다. 홀로 잠에서 깬 나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공포심을 느꼈다. 어렴풋이 드는 지금의 생각에도 나는 분명 버림 받은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 잡혔고, 이내 눈물을 터뜨렸다. 허겁지겁 마당으로 나간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역시 아무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당시 우리 집에서 세를 들어 사는 집에서도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고, 어른들 조차 눈에 띠지 않았다. 나는 더 큰 소리로 목청껏 울었다. 마치 길 한 복판에서 엄마를 찾는 미아처럼, 서럽게 흐느끼며 울어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더 이상 쥐어 짜낼 눈물도 없어졌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고, 바람은 제법 차게 느껴졌다. 입술과 목은 바싹 말랐고, 어찌나 울었던지 충혈이라도 된듯 눈가는 뻑뻑했다. 우느라 지친 나는 장독대 근처에 걸터 앉아 조금씩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 때를 내 평생 다른 어느 때 보다 훨씬 혼자였고, 또 처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만치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동생의 목소리도 엄마나 아빠의 것도 아니었지만, 어쨋든 나를 아는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한 달음에 달려간 그곳에서 동생과 이웃의 아이가 함께 있었다. 무얼하고 놀았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버림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행님아, 울었나? 눈은 왜 그런데?"

퉁퉁부은 내 눈을 본 한살 터울의 동생이 물어왔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자고 일어났더니 아무도 없어서 무서웠다고, 혼자남겨진 것 같아서 겁이 났다고, 나는 말하지 못했다.

 


내 나이 마흔 하나. 언제까지 아이의 곁에 있어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매일 매일을 각오하고 살아야 한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남겨질 사람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비단 돈 뿐만 아닌, 함께 부대끼며 살았던 동안 쌓은 추억 하나라도 더 남기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견디고 또 내딛는 걸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 사랑하는 가족은 나 없는 세상에서 두려움에 떨거나 울고 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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