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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육아(育兒)

갓난 아기 씻기기

by 사용자 aner 2019.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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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이를 양육하는 과정 중에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 허기에 진 배를 채워주기 위해 분유를 타고 젖을 먹이는 일도,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이며 위생 관리를 하는 것 등등. 갓난아이를 가진 부모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서 초보 부모가 가장 어려워하는 일은 단연 아이를 씻기는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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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씻기기 전에 가장 먼저 신경을 써야할 것은 물의 온도다. 100일이 지나기 전의 신생아의 피부는 아직 덜 여문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온도가 높으면 화상의 위험이 있고, 또 너무 차가운 물로 씻기게 될 경우, 낮은 면역력 때문에 금방 감기에 걸릴 수 있다.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알려주는 적정 온도는 35도에서 40도 사이라고 한다. 물의 온도를 알려주는 신생아 욕조를 사용하거나 수은계 또는 비접촉식 온도계를 통해서 확인할 것을 권장한다.

비접촉식 온도계는 출생 신고를 하면 주민센터에서 무료로 수령할 수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밤과 낮의 차이가 몹시 심하다. 낮에는 분유를 먹고 나서는 잠도 잘 자고 설령 눈을 뜨더라도 얌전히 허공을 응시한다. 밤에는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목청껏 우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목이 쉬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기저귀를 갈아주면 될까 싶어서 배변 상태를 확인해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깨끗하다. 배가 고파서 그럴지도 모르겠다가도 가만 생각해보면 이미 자기 전에 정량을 다 채운 상태다. 그래로 부족할지 몰라 젖을 물리고 분유를 타서 먹여 본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운다. 가슴팍에 끌어안고 눈을 마주쳐도 계속 울고만 있다.

혹시 아픈 것은 아닐까 싶어 체온 측정해보지만 특별히 높지도 않다. 몇분을 끊임없이 우는 동안 아내는 좌불안석이다. 뭐 때문에 우는지 알 수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도 별 수 없으니 어느새 아내의 얼굴은 땀으로 흥건하다. 그런 아내를 보는 내 마음도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아이의 한 손을 꼭 잡고 가슴을 지그시 누르면서 '괜찮아. 괜찮아'만을 연신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별 다른 방도 없이 아이의 울음은 커져 갈 때, 옆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장모님이 방문을 열어 보신다. 뾰족한 수 없어 보이는 딸네의 모습을 잠깐 보시더니 금방 아이를 건네 안고는 어루고 달래신다. 익히 주변에서 들은 바대로, 나는 다른 사람의 손에 아이를 안겨서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아무리 내 부모님이고 아내의 가족일지라도 말이다. 결국 키워야 하는 것은 우리 부부다. 어렵고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 아이를 달래기를 반복하면 결국 독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아이는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어떤 측면으로는 영악하기까지 하다. 몇번의 달래기가 이루어지면 더 이상 그보다 부모의 어르기는 통하지 않는다. 과거 부모님 세대의 경우 아이를 달랠 때, 그 행동의 폭이 크거나 오랫동안 이루어진다. 그만큼 아이의 만족도는 높아지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울음을 그치게 하는 방법으로서는 훌륭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강도가 점점 더 커져야만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일명 '손을 탄다.'라고 한다.

 

언제까지 부부가 초보티를 내고 있을런지 모르겠으나, 하루라도 빨리 익숙해지면 더 이상 다른 가족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온전히 우리만의 힘으로 키우고 싶다. 그래야만 부부만의 훈육법이 빨리 자리 잡히고, 아이도 거기에 잘 따를 테니까.

 

장모님은 아내를 포함해서 아이 셋을 키운 분이다. 그런 만큼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는 베테랑이시고, 무엇하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다. 물론, 세대 간의 차이가 있는 만큼 서로 다른 양육 방식 때문에 우려가 되는 점도 있지만 그만하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단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손을 타는' 일만큼은 없기를 바란다. 뭐, 이미 어느 정도는 장모님의 어르기에 아이는 충분히 만족한 것 같아서 심히 유감스럽지만.

 

매번 아이를 씻길 때마다 장모님이 집에 돌아오시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내와 나는 단 둘의 힘만으로 아이를 씻겨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한두 번은 어려울지라도 하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고 또 익숙해지면 아이도 목욕하는 시간을 싫어하지 않을 거란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지만, 처음 해보는 아이의 목욕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단지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대로만 하면 될 거라 믿었던 내가 한참이나 어리석었던 듯싶다.

 

어찌할 줄을 몰라하는 부모 때문에 아이는 큰 울음소리로 불편함을 호소했고, 물기를 닦아내고 옷을 입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치지 않았다. 아이의 목소리가 걱정이 될 정도로 너무 크게 운다. 목욕이 끝날 즈음과 처음에 듣던 울음소리가 확연히 차이를 보일 정도로 쉬어 있음을 느낀다.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서툴고 어색한 점은 차차 나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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