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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여행 - 후쿠오카, 다자이후 #2
    다녀보기/해외 여행 2019. 11. 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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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미 인 하카타 기온 호텔에서 먹는 첫 아침 식사. 대게 호텔에서 먹는 식사는 편하고 부담이 없다.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수 있고, 어쩌다 남기게 되더라도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서다. 입맛에 맞지도 않은 음식은 보나 마나 다 먹지도 않고 버릴 것이 분명한 내 성격에 원치 않는 음식들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은 고역이고, 일종의 체벌과도 같다.

    언제나 그랬다. 결혼식에서나, 어쩌다 큰마음 먹고 가게 되는 뷔페에서도 지불한 금액의 값어치에 훨씬 못 미치는 양만 먹었다. 돈을 아까워하거나 후회해본 적은 없다. 그냥 내 식사량 자체가 적은 것뿐이다. 물론, 정말 맛없는 곳에서는 몇 젓가락 맛보지도 않고 자리를 뜨기도 한다.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교만스럽게도, 타인의 접시 가득히 수북한 음식을 보면 내가 다 창피스럽다. 때로는 없어 보였고, 가끔은 무식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이유 덕분이다. 그러니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구든 접시 가득 채운 음식을 몇 번이고 오가면서 먹는 사람이 있더라도 괘념치 않길 바란다. 음식에 대한 거창하거나 고루한 철학 따위는 없다. 먹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먹어도 양이 적은 사람이라서 그런 이유. 그냥 거기까지가 전부다.

    찍을까 말까. 식사를 하는 내내 콘크리트 더미가 식도를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목이 멨다. 몇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기는 했으나 촘촘하게 가로막힌 외경 덕분에 딱히 둘 곳 없던 시선은 이리저리 방황했다. 창밖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모처럼의 한가한 시간. 출근하느라 바삐 움직이는 사람이 가득 찬 소경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몇 차례의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어느 호텔에서나 아침 풍경은 거의 비슷한 양상을 띤다.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채 함께 내려 오지 않은 식구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새벽 댓바람부터 일찍 씻고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도 있다. 대게 그런 사람들은 씩씩한 걸음걸이로 호텔 식당을 종횡무진 한다. 맛깔스러운 음식들을 접시에 담아 옮기는데, 그 표정에서는 즐거움과 행복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엄마 아빠의 손을 붙잡고 식당으로 나온 아이들은 저마다의 입맛에 맞는 주문을 늘어 놓느라 쉴 새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엄마나 아빠들은 아이들의 주문보다는 자신의 기호나 건강 철학에 따라 음식을 배분한다.

     

    왁자지껄. 여행객들 대화 소리와 직원들간의 소통하는 소리, 그릇과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한데 모여 마치 관현악단의 연주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다. 엇박자가 나기도 하고, 그다지 조화롭지 않은 높낮이의 음들이 열심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그 정도의 관용과 이해 정도야 사치스럽지는 않을테다.

     

    다들 어제 있었던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다. 어제 방문한 곳에 대한 소회라든지, 먹었던 음식에 대한 평가 등등 오늘의 시작은 어제를 정리하는 것으로 부터 출발하는 기이한 현상이다.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하며, 이번 여행간 가족 모두가 함께하고 있는지. 또 얼마 만에 하는 여행인지 등등. 그들을 알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렸다. 괜한 오지랍이지만 호텔의 음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묻고 싶었다. 전혀 관심 따위는 없겠지만, 내 입맛에는 별로라고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일본스러웠다. 내가 아는 한, 전형적인 일본인이었다. 무엇 하나 옮기거나 내려놓을 때 쇠를 긁는다거나 떨어뜨리는 경우가 없다.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타고난 그들의 기질인 것만 같다. 그래서, 좋았다. 매일 아침 이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흡족했다. 단 며칠 간의 일정 뿐이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그 어느 누구도 고요한 아침을 망치는 사람이 없었다.

    맛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없다. 생각보다 비쌌다는 기억만 남았을 뿐.  행여나, 아내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먹고 싶어도 참고 있을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럴 정도로 가계 사정이 나쁜 것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다자이후 거리에서 팔고 있는 음식들이 꽤 비싼 것도 아니었다.

    숙소의 품질도 여행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먹는 것에 더 많은 가중치를 두는 편이다.

    자연스러운 사진 하나 남기고 싶었는데, 점원이 사진을 찍는 내내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시선 덕분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진을 찍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매서운 눈빛인지는 몰랐다. 6개월도 더 지난 시점에서야 열어 본 사진을 보면서 왠지 찜찜하다. 사진에 담기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혹여 한국인일지도 모르는 내가 싫은 것인지. 어느 쪽을 택일하더라도 내 마음 한켠이 편치 않은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버스 터미널에서 하차한 후 길게 늘어선 상점가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다자이후 하면 텐만구가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과연 신사로 향하는 거리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지난 날, 교토에 갔을 때 경험한 청수사(기요즈미데라) 거리만큼 빼곡히는 아니었지만, 평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많았던 것 같다.

     

    신사가 눈앞에 있음을 알리는 커다란 석문이 인상적이다. 대게 일본 신사 입구에는 빨갛게 칠해진 목조식 문이 놓여 있다.

    타국을 여행하다보면 사소한 것 하나마저도 이색적으로 다가 온다. 그 이색적인 풍경으로부터 전해지는 마음은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긴 여운을 남기고 좀처럼 끝날 줄을 모른다.  때문에, 우리의 발걸음은 다시금 그곳으로 향하기도 한다.



    다자이후 텐만구

    헤이안시대[平安時代]의 학자이며 시인, 정치가인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真]를 신으로 모신다. 903년 생애를 마친 스가와라의 유해를 소달구지에 싣고 가던 중 소가 엎드려 움직이지 않게 되자, 그 자리에 유해를 매장하였다. 905년 유해를 매장한 자리에 사당을 세우고, 919년 사전(社殿)을 건립하였다. 현재 교토(京都)의 기타노텐만구[北野天満宮]와 함께 전국 덴만구[天満宮]의 총본사이다. 스가와라는 학문의 신, 지성(至誠)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해마다 전국에서 700만 명 정도의 참배자가 방문하고 있다.

    경내에는 스가와라가 교토에서 좌천되어 이 땅에 왔을 때 교토에서 날라 왔다는 매화나무 외 196종 6,000그루 정도의 매화나무가 식재되어 있어 매화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본전(本殿)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다자이후텐만구 [Dazaifu Tenman-gū, 太宰府天満宮(태재부천만궁)] (두산백과)

    아내와 나의 것을 각자 하나씩 뽑기로 했다. 동전 투입구에 200엔을 넣고 하나씩 집어 들고 눈에 익은 한자가 없는지 살폈다. '大吉'이 가장 좋은 운수라는 걸 어느 블로그가 소개해둔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내가 뽑았던 '대길'이 적힌 종이는 지갑 안에 고이 모셔 두었다. 안타깝게도 아내가 뽑은 종이에는 그렇지를 못해, '에잇' 외마디 감탄사를 뱉고는 곧장 여느 수많은 사람들처럼 줄 한 켠에 묶어 두었다. 수많은 종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종이에 씐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묶어 두고 간다고 한다. 남겨진 종이를 위해 텐만구 신사가 액땜을 해주고 종이의 주인에게는 나쁜 기운이 깃들지 않는다는 의미란다.

    본당의 오른쪽에 위치한 황소상의 머리를 만지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마흔을 넘긴 지금의 나는 여전히 지혜롭지 못하다. 여행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임을 모르지는 않으나, 만진다고 영특해질 머리면 그게 사람 머리겠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졌으면 몸통에 비해 머리 부분의 색상이 훨씬 밝음을 알 수 있다.

    참배를 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 대열에 끼어있던 외국 관광객들까지 굳이 참배를 해야 할까 싶었다. 단지 불교를 숭상하고 가르침을 따르는 사찰이었다면 나 역시 줄을 섰을지도 모르지만, 이곳은 단지 일본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그저 한 명의 훌륭한 정치인을 기리는 사당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제는 나도 제법 나이를 먹었다는 의미일까. 길을 오가며 마주치는 여아들의 웃음소리에 빙긋이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느끼거나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서 영문도 모르는 나를 알아차릴 때는 영락 없이 아저씨가 된 기분이다. 남의 자식들인데도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지금처럼 착하고 밝은 모습으로 자라주었으면 싶은 바람이 든다. 나도 곧 아빠가 되려나 보다 싶은 생각이 문득 지나갔다.

    텐만구 신사 곳곳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크고 넓게 뻗은 가지 덕분에 나무 주변에서 뜨거운 볕을 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될 법도 하다. 이곳 나무들은 많게는 300년이 넘는 수령을 자랑한다고 한다.

    다자이후에서 맛볼 수 있는 명물. 우메가에 모찌와 오니가와라 모나카. 모찌의 겉은 바삭거리고 속에든 팥은 부드럽게 씹힌다. 그러나,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 입맛에 맞지 않기론 오니가와라 모나카도 못지않았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되더라도 나는 먹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서로 다른 식감이 한꺼번에 입안에 들어오는 것이 싫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음식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이 싫다. 일찍이 소문이 자자했던 음식들이기도 했고, 아내가 여행을 오기 전부터 벼르던 것이기에 먹어나 보자 싶었던 것뿐이다. 그저 개인의 취향일뿐이려니 생각해주길 바라며 여러분은 꼭 한 번은 드셔보시길 권한다.

    모나카는 제법 크다. 결국 딸기와 모찌를 따로 떼어 먹어야 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한 입에 깔끔하게 먹기가 힘들다. 먹어보면 안다. 자신의 턱과 입이 얼마나 벌어지는지 시험해볼 수 있을 거다. 어렵사리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을 파고든 맛은 역시 생각했던 대다. 딸기의 싱싱함에 감탄한 것을 제외하면 특별할 것이 없다.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독특한 조합이 가장 특별했다고나 할까. 그렇더라도, 역시 이종의 음식이 섞이는 것은 몹시 싫다.

    텐만구를 빠져나와 인근을 배회하며 마주친 어느 집의 전경. 개명을 하기 전 과거 내 이름의 한자 중 두 개가 똑같아서 반가운 마음에 담았다. 개명을 하기 전 내 삶을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이름처럼 살 수 있는 운명이었다면 오래도록 편한 삶이었을 테지만, 그게 또 사람 마음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쉬이 오는 행운 따위도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처음 아내와 내가 관서 지방을 여행하기 전, 일본 현지에서 먹는 스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껏 기대했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찾아간 스시집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는 없으나, 기대했던 만큼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차라리,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스시의 맛이 우리의 입맛에 잘 맞았던 만큼 만족도로 훨씬 높았다. 물론, 본고장에서 먹는 음식이 주는 풍미와 재미는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튼, 이번 후쿠오카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일대의 유명한 스시집을 일정에 포함시키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다자이후 여행을 마치고 다시 하카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날이 어둑해졌다.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초밥집을 찾았는데 사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뭐랄까 날 것을 그대로 먹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밥에 쓰이는 단촛물의 간이 입맛에 맞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은 꼭 한번 가보기를 바란다. 나를 제외하고라도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곳이니 말이다.

    텐진, 수많은 블로거와 여행 작가들이 앞다투어 가보라던 곳. 하카타 역에서 불과 두정거장인가? 정도만 가면 될 정도로 아주 가깝다. 하카타 지하상가와 백화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으나 딱 한 장의 사진만 남겼을 정도로 감회는 없었다. 조금 고급스럽게 늘어진 쇼핑 거리였다는 것 정도만 기억에 남았다. 텐진 지하 거리를 거닐은 지 10여 분이 조금 지났을까. 우리 부부는 곧장 떠날 것에 합의했다.

    영락없는 박카스. 여느 개발도상국처럼 우리나라는 이웃하는 일본이 없었다면 과연 어디에서 그 많은 제품에 대한 영감을 받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흡사하거나 같다고 보아는 것이 타당한 제품들이 많은 것 같다. 과거사와 또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두 민족, 국가 간의 갈등만 없었더라면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싶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100엔 순환 버스를 이용했다. 가는 중간에 또 다른 지역 명소로 알려진 카날 시티에 가기 위해서 내렸다.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구입할 수 있는 브랜드가 있기는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특색 있고 전형적인 일본스러운 상품을 파는 곳도 더러 있으니까. 게다가, 한국에서 판매되는 일본 제품의 경우 확실히 한국보다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단연 유니클로.

    하루 종일 어깨에 메고 다닌 카메라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상당했다. 채 여름이 오기도 전이었지만 생각보다 날은 더웠고, 내내 걸었던 걸음만 하더라도 내 체력으로는 상당히 무리였던 일정이었다. 체력은 고갈됐고, 발바닥과 엉덩이는 뻐근하게 저려왔다. 가능한 많은 것을 아내와 함께 하고자 했던 터라 즐겁게 보낸 시간이기는 했으나, 힘든 건 어쩔 수 없더라. 쉽사리 올라올 줄 모르는 손목 덕분에 많은 사진을 담아내지 못했다. 벌써부터 나이가 들어감을 실감하면서도 훗날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닐 즈음이면 그때는 어찌해야 할까 싶은 걱정도 앞섰다.

    가보고 싶은 곳 많고, 구경거리 많은 곳이지만, 아내와 나는 앞으로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마지막으로 일본 여행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 우리가 어린 나이축에 낄 수 있다면 더 많은 곳을 다녀보고 자주 찾겠지만, 우리 부부의 나이가 적지가 않다. 가보지 못한 나라가 더 많고, 또 죽기 전에는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풍경이 내 머릿속에 그득하다.

    카날 시티 맞은편, 세븐 일레븐에서 산 삿포로 맥주와 계란 샌드위치. 맥주는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샌드위치는 반드시 먹어  보아야 할 잇 템이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블로거들의 평가는 사실이었다!

    휴족시간. 우리나라 소매점에서도 팔리고 있는 제품인데, 일종의 파스 따위다. 발바닥이나 종아리 같은 곳에 붙여두면 피로가 풀린다는데, 나는 별 효과를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최근 하루 종일 걸어다닌 적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운동량이 적은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나이 먹은 티를 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일본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필수 템이라고 하니, 기회가 되면 한 번쯤 써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관심있으신 분은 아래의 링크를 눌러 한번 살펴보시길 권한다.  

    다자이후 텐만구 관광을 마치며 나오는 길에 샀던 과자. 얼마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영수증은 여섯 달이 다 지나도록 구석 어딘가에 내버려 두다가, 결국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차피 내 여행기는 정보를 담고 있다기 보다 몇 장의 사진과 사진을 설명하는 몇 줄의 행 그리고 짤막하게 남기는 느낀 점 정도다. 아무튼 바삭거리는 식감이 좋고, 생과일을 원재료로 해서 그런지 시큼한 맛도 난다. 왼쪽의 것은 딸기를 원재료로 하고, 오른쪽은 포도라고 했던 것 같다.

    모든 여행의 피날레는 숙소에서 아내와 함께 마시는 맥주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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