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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으로부터 시작되는 불신
    오늘의/기록(記錄) 2009. 3. 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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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주위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이마가 넓지만 그만큼 마음도 넓어서 좋고, 그 마음이 나와 더할 수 있어서 언제든 우리는 더 큰 사랑과 존경해마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어서 좋다. 또 어떤 자는 매번 덜렁거리고 신중하지 못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지만, 다행스럽게도 긍정적이며 유쾌한 사람이라서 좋다. 얼굴은 못생겼지만, 그 사람됨이 좋은 사람도 있고, 단지 피부가 뽀얗고 이쁘다는 이유로 좋은 사람도 있다. 핑계를 잘대어서 매번 마음 상하게 하는 결과를 던져 주면서 무책임한 듯 한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말만큼은 무척 잘해서 좋은 사람도 있다. 물론, 그 사람들에게 그러한 모습만 있는 것도 아니다. 죽어라 싫은 점도 있고,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비단 사람의 문제에만 국한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좋아할만한 이유와 싫어할만한 이유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느 것이든지 암묵적으로 합의할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 알고 있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이유를 들어야 할 때에는 머리속에서 달리 그 어떠한 사실도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떤 자를 싫어할 때는,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던 사람이거나 몹시도 좋아하던 사람이 불연 너무 싫어지는 경우가 있다. 대다수의 경우.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같은 경우에는 싫은 이유가 그렇게 하게된 이유가 반대의 경우보다 더욱 명확하다는 것이다. 일일히 열거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가지 경우를 들어가면서 계속해서 곱씹어 증오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좋은 사람의 경우는 '좋은 것이 좋은 것' 이라는 관용어를 써서 마무리 지어도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반대의 경우는 열렬히 해명도 해야하고 핑계도 대어야 하며 때로는 온갖 아부와 아첨을 동원해야하는 경우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지 않은가? 그게 적절히 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하는데에도 이견은 없지만 그런 경우에서도 이유는 명확하게 들 수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우리는 구체적인 존재인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확히 불안한 존재인 것 같다.

      명확한 이유 없이도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게 될까 불안하다. 오늘 아침 출근을 했을 때 나의 자리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을까봐 두려우며, 시험에 낙방하고, 버스를 놓치고, 지각을 하게 될까봐, 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는 범죄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며, 나의 아이는 오늘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을까하고 노심초사 한다. 내일은 뭘입지? 내일은 인력소에 나가면 하루 풀칠할 일자리는 있을까. 내가 과연 좋은 아빠가 될 것이며, 좋은 남편이며 아내가 될 수 있을까.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평생을 같이 살아오던 나의 아내와 남편이 당장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까. 일일히 나열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우리는 매일을 명확치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있다. 그때문에, 연인의 마음과는 달리 자괴심과 상실감을 느껴 도리어 이별을 고하기도 하며, 걱정만 하다가 앞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업무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다음번 기회가 있는데도 단 한번의 실패로 포기를 선택하게 되는 친구들도 있는가하면, 약속을 펑크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즐거운 하루를 만들 수 있는 기회마저도 떠나는 버스의 꽁무니에 덩그러니 달아버리고는 한다. 스스럼 없이 무탈한 아이를 공연히 신경을 써서는 도리어 뜻하지 않게 감성적 결핍을 안겨다주게 될 것이고, 혼자서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자존적 생존 능력이 없는 인형처럼 만들어 버리기도 하지 않는가? 오늘을 살면, 피와 땀을 흘려 오늘을 살게 되면, 그리고 힘껏 사랑하면, 분명히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 수 있는데,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고, 남편과 아내도 될 수 있을텐데, 우리는, 너무도 걱정이 많지는 않은가? 눈앞에 그저 좋은 사람이 있는데도, 걱정이 앞서 말한번 붙혀보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다시는 오지 않을 잿빛을 쏘이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다양하고 좀 더 구체적이며, 복잡한 이유가 있기도 하겠지만 나는 우리가 태생적으로 불안한 존재라는 것 때문이라고 본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대상을 바라보는 것 마저도 불안하게만 다가오기 때문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삶을 채워나가는 동안 우리는 무지무지(無池)했던 스스로가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해 한해 그리고 한권 한권의 책과 좋은 한사람, 싫은 한사람 계속해서 그러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며, 그 속에서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사물이나 사람 그리고 관념과 사상을 포함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넓은 시각으로 아울러 볼 수 있는 능력을,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 역시 조금씩 자라는 생명체와도 같다. 태어나서 우렁차게 우는 아기가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부모에게는 어떻게든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명확한 의지와 목표가 있으며, 이는 실로 가치있는 것이며 또한 실증적이고 구체적이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한 아이는 살집이 불고 뼈대가 크면서 유년과 청년기를 거치는 동안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그리고 임종 앞에서는 그 어느때보다 구체적이다. 실존적이며 사실적이라고 하는 것 정도는 두 말할 것도 없다.

      불안으로부터 시작되는 우리는 끝끝내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구체적인 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우리의 모습이 어떤지, 그리고 나는 당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혹시, 좋은 것은 굳이 이유를 들지 않아도 좋지만, 싫을 때에는 잔인할만큼이나 구체적이고 요목조목 이유를 들어가면서 장황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닌지? 내 마음과 같고 나와 생김이 같다면, 성장환경이 같으며 학식과 교양이 같다면 이보다 더 확실한 힌트는 어디에 있는가? 그냥 나대로 사는 것이 그들을 아는 것이고 그들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적당히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고, 성장환경과 재산의 상태와 학식의 정도에 따라서 차이를 보이는 것을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은 불안한 요소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불안으로부터 오는 불신은 겪어보지 못했다는 경험칙을 이유로 들 수도 있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실도 많은 작용을 한다.  앞서서 장문의 글을 써가며 풀어서 풀어서 말을 하고자 했던 것은 다른 것 아닌,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데에서 부터 우리는 불안을 명확하고 구체적인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다르고, 그가 나와 어떻게 차이를 보이는지는 둘째치고라도 다만, 우리는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에 비로소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당신에게 내가 다가갈 것이고, 당신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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