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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作
    살펴보기/도서(圖書) 2010. 8. 2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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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영화의 포스터를 접할 적에 줄리안 무어의 얼굴을 더듬는 손가락들 본 까닭에 공상과학영화 정도로만 생각을 했다. 물론, 그도 그럴 것이 그 이전에는 '주제 사라마구'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그가 어느 정도로 저명한 인사인지를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눈먼 자들의 도시』에 관해서는 들어서건, 보아서건, 어떤 형태로도 접해보지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급선무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슬펐고 끝없이 밀려드는 더러움과 추악함,두려움 그리고 괜한 자괴감으로 어쩔 수 없었던 나 또한 저러한 인간일 수 밖에 없는 미안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고스란히 인정할수 밖에 없었으며, 상남동 한 복판에서 발가벗겨진 체로 조롱거리가 된 것 같은 거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벗어날 수 있는 의지조차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중에 그것을 볼 수 있는 자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희안한게도 내 마음속에는 조금씩 자라나는 환희가 있었다. 전자의 단어들은 일부러 설명치 않더라도 예상하여 볼 수 있겠지만 환희는 조금 다르다. 이 영화와 소설 속에서 환희를 느낀 사람이 있을런지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영화를 보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리고 끝이 날 때까지 자라나고 완성되던 환희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는 나는, '과연 어떤 인간인가'. 그리고 내가 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어디인가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단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체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일말의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아니다. 이 작품이 서술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럽고 추하지만 사실은 순수함 그자체로도 형용될 수 있다고 단언 할 수 있다. 익명의 그 자들은 '나' 자체이기도 하지 않는가?. 도둑이건 저명한 의사이건 그리고 정부의 관료나 군인 그들에게 붙혀진 이름이며, 입고 있는 옷이 다 무엇인가 말이다.

    실체는 아무래도 상관 없이 순수함을 보았으며, 볼 수 있다는 것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 둘다 보고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다. 작가는 시신경과 각막사이의 생물학적이고 의학적인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으며 하물며 그러한 것에 대해서 탐구할 것을 의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다 본다. 단순히 우리가 육안으로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마음을 둘 수 없는 것이며, 작품을 본 후 많은 사람들은 혹여,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앞선 언급한 바와 같이 주된 메세지는 아니라는 것 또한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피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한 사실을 명심하고 영화 속에서 그리고 책 속에서 우리가 누구이며, 물론 나는 순수하게도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해서 자각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정녕 볼 수 없음에도 금붙이나 보석에 열성을 다하고 있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렇다고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사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볼 수 없어도 조직과 사회는 구성되고 자연의 법칙에 스스럼 없이 게다가 현재까지 우리가 만들어 놓은 관념이나 사상을 초월해서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움직여 줄 것임에도 틀림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렇게 될 것임에 동의하라면 흔쾌히 할 것이다. 섹스도 할 수 있고, 죽이기도 할 수 있으며 양육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방법론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안도 없지만 그냥 그렇다고 해두자. 착취와 폭력도 문제될 것이 없으며 도리어 도덕의 잣대도 필요가 없어 보이지만, 언급한 바와 같이 조직이 구성되고 나아가 통틀어 민족과 국가의 개념이 다시금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하게 될 쯤에는 그마저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그 나름대로의 법규와 제도가 서게 될 것이고, 그러는 가운데 가치관도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지금의 것과 어느 정도로 다르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으로 다루어지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자연적인 삶이 될런지도 모르며 반대로 더욱 끔직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금 우리가 염려할 것은 아니다고 하는 데에는 다름이 없다. 덕분에 지구의 환경은 자정작용에 더 많은 힘을 쏟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우리는 더 많은 위험에 노출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구만큼은 살릴 수는 있을 것이다. 내가 죽고 나면 지구가 무슨 상관이겠냐만 아무튼 그것을 논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아직 읽고 싶은 책도 쓰고 싶은 글이 너무도 많다. 이어서, 눈은 뜨지만 인식할 수 없고 우리 자신의 표상을 온전히 바라볼 수도 없으며 자각할 수 없는 무지몽매한 절대의 다수와 처음부터 볼 수 없었던 늙은 노인, 그리고 인식과 자각을 넘어서 비로소 그러한 상황에서야 그들 자신의 실체와 온전한 삶을 볼 수 있게 된 1인, 그들 중 누가 가장 끔찍할텐가? 절대의 다수는 이 작품에서 부연설명을 위한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시력이 없는 맹인과 혼자만 볼 수 있는 한 사람. 우리는 그렇게 하게끔 만들어진 것일런지도 모르지만 그 사실이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스스로가 더욱 끔찍한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피할 수 있다고 피하고 싶은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본 지가 석달이 지나서야 책을 집어 들었다. 무서웠기 때문이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펐기 때문이며 위로도 받았기 때문이다. 굳이 책을 다시 읽어보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읽어본 후로는 많은 사람들은 훨씬 이전에 읽어도 보았을테고, 철학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나는 다행스럽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는 다르게 영화는 책을 충실하게 표현하였으며, 되려 활자를 뛰어 넘어 보다 강하고 자극적으로 우리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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