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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육아(育兒)

뉘집 자식이길래 이리도 이쁜고?

by 사용자 aner 2020.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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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면 칠색 팔 색을 하던 내가, 정작 내 자식을 가져보니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더라. 상황이나 의미 자체가 조금은 다를 수 있겠지만, "너도 니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라고 말씀 하시던 엄마가 문득 떠오르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기 까지는 아직 먼 이야기인 것 같지만, 곧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짐짓 들 때도 있긴 하다. 아무리 말이 그런 거라지만, 어찌 눈에 저 큰 존재를 넣는데 아프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처음 이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아빠가 됐다는 사실을 실감하지는 못했다. 전혀 생각 없이 가진 아이도 아니겠거니와 익히 주변 경험자들로부터 전해 듣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의 경험이고 생각일 뿐, 나로서는 와닿는 부분은 좀처럼 없었다. 단지, 10개월에 걸쳐 뱃속에서 키워내고 10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산통을 겪었던 아내가 안쓰러웠다. 그런 제 자식을 어찌할 바를 몰라 진땀을 흘리던 아내의 모습에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처음 해보는 부모의 노릇에 괜한 것 같다는 것조차 그냥 넘어가지를 못하는 아내가 답답할 때도 있었다. 그저 그런 아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고, 위로라도 되고 싶었다. 조그만 부분이고 적은 양일지 모르지만, 가능한 도움이 되어 주고 싶었던 것뿐이다.

정말 솔직히 말해서,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때는 고작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눈을 마주 보고 통하지도 않는 옹알이를 따라서 해본다. 놀랍게도 아이는 마치 나와 대화라도 나누듯 옹알옹알하기를 반복한다. 몇 차례에 걸쳐서 옹알이를 주고받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환하게 웃어 보인다. 두 손을 공중에 저어대며 까르륵 거리면, 음식을 준비하던 아내도 큰 미소로 아빠의 딸의 모습을 반긴다. 여전히 엄마가 최고고, 내 품에 있으면서도 엄마가 시야에서 벗어날 때는 금세 울어댄다. 그나마 그것도 최근 들어서 조금씩 줄어든 것 같다.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고, 커가면서 점차 줄어들 테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구석구석 나를 닮지 않은 곳이 없다. 좀처럼 하지 않던 '내 새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꼭 끌어안고 혀 짧은 소리로 '꼰딱마'라고 말하면 어김없이 눈물을 터뜨린다. 그 또한 어찌 이쁜지 엄마의 손에 끌려가는 아이의 손과 발을 조몰락 거리는 나는 더 큰 애틋함을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집 주변을 걸을라치면 내가 늙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저 조그만 두 발로 벌떡 일어서고, 스스로 걸음을 옮겨 내 품에 안기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결국 나와 아내의 얼굴에 주름이 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어린이집을 가고, 금세 유치원도 다녀야 할 때. 처음으로 품에서 떼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될는지는 굳이 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될 것이고, 제아무리 막아서도 되지 않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곧 옹알이를 마치고 "아빠" 하고 나를 부르기만을 기다리는 나는, 오늘도 이 작은 세상을 지켜내기 위해서 한 걸음씩 걸음을 앞으로 내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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