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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 기욤 뮈소 作

by 사용자 aner 2011.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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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 다가온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다르게 살 것을 요구한다. 남은 시간을 온전히 즐기라 한다. 조금만 더 살 수 있다면 지옥에라도 떨어지겠다!

 

목전(目前)에 죽음이 임박했다. 뚜렷한 외상 없고, 의사로부터의 병명 진단서도 없이 내려진 사망에 대한 예정. 삶과 죽음의 교차로에서 다음 신호를 기다려야만 하는 일말의 선택 없는 일방 통행돌아가고자 할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신호는 바뀌었으며, 제각각의 삶이 뒤를 꽉 메우고 있다. 겹겹이 쌓여 있는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과 수 많은 오해와 불신의 삶은 총체적 난국이며, 이는 결코 우리에게 쉬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는 과거는 통한의 세월이다. 물론, 삶의 전체가 ‘행복’만으로도 회상될 수 있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서, 그만한 것으로 충분했다고 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어찌 삶이 그것만으로도 가능하겠는가? 워드프로세서의 수정 기능처럼 바꿔 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고쳐 쓸 수도 있고, 뭣하면 지워버릴 수도 있는 편리를 제공해준다면 쌍수(雙手)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근엄하게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우리를 지켜선 삶은 그 어떤 방편도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노력했더라면, 지금 보다는 훨씬 더 나은 시간을 누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를 지울 수가 없다. 조금 더 악착같이 살았다면, 더 큰 평수의 집에서 살 수도 있을 것이며, 좋은 자동차며, 옷이며 하는 것들로 치장하고 살았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이기도 하고, 동시대60억의 목표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니 이 정도 고백이야 크게 부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부족한 것은 없을까? 내일 당장 죽어야 한다면, 예정되어 있는 일이라면, 누군가의 말처럼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어야 할까?

 

그 질문 때문에, 우리는 삶을 두고 떠나기가 더욱 두렵다. 앞으로 남은 계획과 삶에 대한 애착은 물론이며, 지난 세월 미처 해결하지 못한 과제는 이미 난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해서, 단 하루의 시간이 허락된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만은 속 시원히 해결하고 싶다. 삶과 죽음의 연속성에는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나고 죽는 동안 무수히 많은 사건과 사고,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과도 같은 필연(必然)을 내포하고 있다. 최소한 누군가의 아들로서 살아가고 있는 나만해도 그렇다. 파르랗게 젊었던 그 혈기 넘치던 그 시절 만나고 헤어진,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내겐 그 만큼의 사람과의 관계가 있었고, 그것을 온전히 지켜내야 할 일종의 책임과 의무감 같은 것도 있었다. 그렇다면, 어찌하면 그 무거운 짐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에 관해 어렴풋하게 나마 답이 되어줄 사람이 여기에- 네이선 델 아미코와 그의 가족 그리고 가렛 굿리치- 있다. 가난한 편모슬하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웩슬러 가문의 가정부의 아들로 사는 동안 가난한 삶에 대한 혐오와 염증을 느낀다. 그리고 보란 듯 명문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뉴욕에서 유명한 로펌의 변호사가 된다. 어린 시절을 함께한 제프리의 외동딸 말로니와 사랑에 빠지고, 우여곡절의 끝에 결혼을 하게 되지만, 웩슬러 가문의 멸시와 천대에 대한 복수심을 키운 네이선은 장인과의 법정싸움에서 이기게 되며, 불행히도 말로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이가 사망하게 되면서 행복했던 순간 모두가 깨져버린다. 말로니와 딸 ‘보니’ 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션’의 죽음에 대한 자책감으로 살아간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 더욱더 일에 매진하고, 원인 모를 가슴의 통증에 불안함이 엄습하던 때 ‘죽음의 메신저’ 가렛 굿리치가 자신의 사무실을 방문하면서부터 이야기는 급속도로 전개된다.

 

이 책을 읽은 후 생각해 볼 때, 과연 내 삶을 통틀어 고쳐 쓸 곳이 성공을 위한 가도(街道)뿐이겠는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더 많은 부와 명망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해지지는 않았던가? 솔직히 말해서, 대단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그렇게 살았으므로 지금에 와서 만족스러움 보다 후회할 것들이 대양의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있다. 아낌없이 헌신했던 부모님께 단지 돈 봉투만 두둑이 챙겨드리면 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때가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들의 희생을 바라며, 요구하고 관철했던 적도 있다. 비단 부모님뿐만 아닌, 주위의 친구도 그렇고 직장에서의 동료와의 관계도 비켜갈 수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나는 참으로 부끄럽다. 네이선처럼, 부잣집 외동딸이었던 말로니에게 능력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일에만 매달리고 인간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도록 참된 인생에 관해 부지불식(不知不識)한다면 그것으로 인생이 충분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말 못 한 각자의 이유가 오해가 되고 불신으로 자리매김할 때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서로 멀어져만 가야 하는 아픔은 그리움을 낳고 외로움이 된다. 더디 회복되는 상처는 죽음을 면전(面前)에 두고서야 표면 밖으로 얼굴을 들이밀어 마지막을 맞이하지만, 할 수 있다면 그 전에 이 중대한 과제를 마무리 짓고 싶다. 그 동안 미처 알지 못했거나, 다루지 않았던-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핑계했던, 나의 선택들을 – 과거를 돌아 본다. 이미 오래전에 잊힌 듯 추억에 파묻힌 앨범을 뒤져 보며 나는 그들을 그리워하며 이따금 들려오는 소소한 소식에 귀를 기울여 내 소중한 당신들을 찾아 걸음을 떼어 놓을 테다.

 

기욤은 우리 인간이 과거에 대해서 어떤 집착을 보이는지, 그리고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정신심리의 병적인 것들을 보편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세련된 문체와 시간의 간격으로 구성된 단락은 영화로 만들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한 컷 한 컷마다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게다가 보편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의 서술 방식은 더욱 빛을 발하며 쉽게 읽혀지는 작품이다. 이 점은 작가가 어떻게 해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이전의 작품(국내 완역 출판된)과 동일한 플롯과 흡사한 스토리를 다룸으로써 고루함과 식상함을 느끼게 한다. (물론, 『그 후에..』는 그의 두 번째 작품이지만, 국내에는 마지막으로 완역된 것이니)더불어, 그의 모든 책에서 그렇듯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위해서 3인칭 시점뿐만 아닌 가렛 굿리치와 같은 ‘스토리 텔러’ 역할을 등장시켰다. 참신한 스토리의 전개와 플롯의 구성은 기존에 접했던 소설들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으며, 매력적이었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삶의 필연 요소이지만, 계속되는 이러한 구성은 이제 바꾸어 볼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꽤 멋진 일러스트로 장식된 북 커버는 글의 내용과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울러,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만 ‘부가항력’인 삶을 이제라도 바로잡고자 하는 여러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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